이 책을 언제 읽었더라??


자신, 타인,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9월 28일에 김영하 작가가 온다고 했으니, 그의 생각을 통해 무언가를 넘볼 수 있을 것 같다.

47.

Los humanos tambien?

 

 

48.

*<I must love(나는 사랑해야만 한다)>, (카르팡트라 박물관에서) 그의 주인과 함께 화포에 담긴 개의 목걸이에서 내가 발견한 글귀이다.

 

-> 이 문구에 나는 반대한다.

사실 이 글귀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개가 적은 것일 리가 없다.

 

사람이 생각하기에 개가 가져야할 마땅할 생각을 적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개가 사람을 사랑할 때 '과연, 사랑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며 사랑을 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지, 사랑해야하니까 사랑한다라는 인과관계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개가 다친 사람을 구해야한다에서의 '~해야한다'의 논리구조는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또 개 또한 언어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의미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구해야한다'는 것은 '구하다' 이상의 상위의 근본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함으로써 더 상위의 개념에 종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수단이 되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개는 어떤 사고와 자신이 행동하는 것과 물아일체가 되는 경지에 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질 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행동으로 표현할 뿐이다.



69. 회교도란 무엇인가?

이슬람교의 다른말이었구나.



70. 사람도 아닌 것들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 얼마나 사람 중심적의 생각인가, 오히려 사람이 아니라서 동물들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감정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76. 人間이 自然의 一部라는 事實은 疑心의 餘地가 없다.



77. 우리 모두는 세상에 온 이유가 있겠지..?


la rázon ..





78.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느낟.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 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79. 개에 대해서 감상적으로 떠벌이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que decir sobre el perro emocionalmente es cosa ridícula.



33. 1940년에는 전화가 없었나?

유선전화의 발명이.. 19c 후반이었는데, 전화가 프랑스와 알제리에 보급이 안 되었던 것일까?


일주일 전 정도에 편지로 어디서 만나자, 마중을 나와달라 라고 말하는 것이 생경하다.


마중을 나갔다가 자칫해서 못 마주친다면? 


그리고 만약 기차가 연착하면 역 구내식당에 가 있어라고 했는데, 얼마동안 연착할 지도 모를텐데, 하염없이 식당에 가 있으려나?


예전에는 그만큼, 사람들의 인내심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척 길었을 것 같다.


아무튼 이 둘의 주고받는 글은 정말 보기가 좋으다~!

16.09.08. 20:42 in 중도.





결국 사랑의 책이다. 힘들 시간을 이겨내게 하는 것. 삶에 있어서 홍일점(-혹은 청일점)같은, 빠질 수 없는 -결코, 아름다운 것, 한 번 매료되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만일, 헤어나왔다면 언제 그랬냐는듯. 하지만, 그때를 가늠해볼 수는 있는, 상념에 잠겨볼 수는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같은, 결코 시간이라는 퇴적층이 덮을 수 없는, 중성미자가 그 아무리 두꺼운 baryon들을 다 뚫고 나오듯이 덮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 오로지 그 한만을 바라보게끔 하는, 삶을 움직이게 하는,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일어날 있는 모든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의 경계에 있는 그 최전방 맞닿아 있는 것. 그것이, 그것이 사랑이고,ㅡ이 책을 그 사랑 love amor에 관한 서술, 묘사를, 죽음이라는 모든 것을 시간이라는 이름 하에 삼켜버릴 것만 같은 무기로 과연 그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의 경계에 있는 것 답게 둘러둘러 완곡히, 하지만 적확하고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사라마구야말로 정말 사랑할 자격이 있다!! 사라마구는 정말 진정한 사랑을 해 보았음에 틀림이 없다!
-16.08.29 in 서울행 KTX

16.07.22 ~ 08.29

주제 사라마구에 관한 처음 책의 후기를 쓰고 있는 것이기에 주제사라마구에 대한 간략한 조사를 먼저 하도록 하겠다.

덧1) 나는 주제사라마구의 이름이 주제 사라미구인줄 알았다. 이는 예전에 해리포터를 보면서 알게된 슬리데린, 또 다른 하나, 또다른 하나, 그리고 그리핀도르(해리포터가 팀으로 소속받은)에서, 그리핀도르를 '그리핀도르'가 아닌 '그리핀로드'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덧2) 이렇게 잘못 오인하고 있었던 단어는 참 많다. 예를 들면, '아까' 라는 단어를 나는 꽤 (아마 제대 후인가, 입대 직전인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악가'라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헷갈리는 단어, 굳이, 구지 굳이가 맞겠지,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다. 삼천포는 경남 창원인가, 마산인가, 진주인가? 진주일거다 아마, 삼천포 근방에 내가 갔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정말로 삼천포로 갈려하구나! 일천포까지만 갔다고 하자!

다시 이제 주제 사라마구로 돌아와서 유라시아 대륙의 극서, 포루투갈의 작가로

1922년 11월 16일에 태어나서 2010년 6월 18일에 사망했다고 되어있다. 89세라는 나이동안 죽기직전까지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한 것 같다. 내가 포르투갈에 가보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가 되는 공간인 포르투갈의 수도, 옛 대항해시대의 위엄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약간 기세가 적은, 하지만 그렇다고 주눅들지는 않은 그런 도시 리스본과, 포르투갈 제2의 도시, 수도로 부터 버스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포르토에 갔다왔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정말로 큰 축복인 것 같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인 산트라시의(기억상 맞나?) 호까곶에 갔다왔다는 것은 이제 내게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인 포항의 호미곶에 다녀올 일만 남았다는 것을 내게 떠올리게끔 한다. 그렇다고 러시아 위쪽의 알래스카와 거의 맞닿아있는 그쪽으로의 추운 극동으로는 별로 갈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자 의식의 흐름을 지나 이제 이 책의 와닿는 글귀들을 이제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메모해 둘 것이다.






이 책이 '눈 먼자들의 도시' 이후의 후속작, 소설 속에서 4년 후의 이야기라니, 나는 몰랐다. 지금 읽고 있는 와중에서도,,

p.150

내일 본다는 것이 그 간단한 말과는 달리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그럼에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기적적인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맞다. 평소 나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내일 봐, 다음에 봐, 오늘은 어떤 이들의 마지막일텐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어떤 오늘이 마지막인 날이 있을 터인데, 내일 봐 라는 말은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아마 어쩌면 노년의 시기에는, 내일봐라는 말을 아마 작별인사로 어린아이들처럼 안하지 싶다. 아직 나는 늙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늙은 이들은 젊어도 보았고, 늙어도 보았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는 않기에, 하지만, 젊음은 특권이리라.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괜히 있지는 않을 터이다.

얼마전 계절학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 동아리방에서 OO누나에게 응, 내일봐 라면서 항상 수업끝나고 동방에 서로 오기에 그런 구구절절 풀어내는 설명이 없이도 ㅋㅋ 라는 웃음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지만, OO누나도 동방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러 이유로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일 봐라는 말은 정말 연약해서 깨지기가 쉽다는 것. 하지만, 내일 봐라고 말한 후 내일 보는 case는 많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는 얼마나 특별하고 기적적인 일인지 알아야할 것이고, 주제 사라마구 또한 얼마나 특별하고 기적적인 일인지 설명하려고 하는듯 하다. 

장 그르니에는 고양이 예찬론자에 틀림없다.

p.58

그렇지만 고양이는 존재한다. 라는 문구에서부터 보면 알 수 있다.


도대체가 장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이 작가는

19c 말에 태어나서 1971년 3월 5일에 죽었다는데에도, 왜이렇게 21c가 16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도 왜이렇게 시대의 괴리를 느낄 수 없겠는지 모르겠다.


p.61

<경박한> 주제에 대해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 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라고 한다. 지금 내가 딱히 집중적으로 하는 것도 없고, 약간의 방황을 하는 쥐라 그럴까, 이렇게 책을 읽는데에 집중을 하는 것은 이것 또한 삶에 있어서 <경박한>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다는 행동이 경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다른 해야할 일이 더 많을 터일 텐데, 이러고 있으니


p.68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유를 좋아할 뿐이다.



p.84

낯선 도시에서 비밀 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내 꿈 이야기로 되돌아와 보자.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임을 드러내보이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낯선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라도

나는 실제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면 싶다. 예를 들어서 실제로 어떤 나라를 가보아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모르는 척하고 싶다. 내게는 익숙한 어떤 사상을 누가 장황하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처음 듣는 것처럼 하고 싶다. 누가 나늬 사회적 지위를 묻는 다면 나는 지위를 낮추어 대답하고 싶다.  ... 유식하게 떠드는 사람의 말은 듣기만 할 뿐 이의를 말하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격>이 낮은 사람들과 왕래하고 싶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파리는 모든 대도시들이나 마찬가지로 귀중한 곳이다.


p.90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166

언제나 손에 잡으려면 벗어나는 것이 그 본질인 현재가 아주 예외적으로 마치 기름에 의해서 잔물결로 변하는 파도처럼 질펀해져 버릴 수는 없을 것인가?

나는 오히려 무가 되고 싶었다.

그저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싶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라.
Entendara(?) como todavi'a yo quiero olvidarme. ???



p.168

그러나 그날, 얼마나 엄청난 정적이었던가! 나는 그 단조롭게 퍼덕이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마치 자기의 수단을 상실한 비행사가 자기에게 오는 음파만을 믿듯이 그 소리에 인도되어갔다.(19c에 태어난 사람 맞나?) 그냥 그렇게 걸어만 갔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어떤 무(無)를 향한 걸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잡아주고 있는 어떤 줄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장밋빛과 흰빛의 바둑판 무늬 같은(띄어쓰네?) 아랍인들 마을, 내 주위에 닫혀 있는 집들의 푸른빛 정면, 상자 갑같이 반듯반듯한 유럽 사람의 집들, 내 발 밑에 펼쳐진 중학교의 직사각형 교사들, 팔처럼 곡선을 그리는 해군청, 군데군데 쪽 빛으로 짙어지는 푸른 바다가 나를 저희들의 존재에 참여시켜주고 있었고 

그 존재가 내겐 착각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의 존재보다 더 착각도 덜 착각도 아닌 것이어서, 우리는 나나 저희들이나 한결같이 아무런 의지할 버팀대도 없지만 서로서로를 지탱해주고, 매순간 우리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이 새어나가도 속수무책이지만 서로의 피를 주고받으면서 그것 자체로 놓고 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절대적 통일l'Unite'을 은밀하게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p.173

가장 먼 곳에 대한 사랑을...... .

- 차라투스트라

 

북쪽의 어느 낯선 고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내게는 삶이 무겁고 시가 없어 보였다.
시가 없다는 말은 더할 수 없이 단조롭기만 한 것에서 매순간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만드는 그 뜻하지 않은 놀라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새롭게 여겨지는 것에서 단조롭기만 한 면을 발견해 가는 중이었으니 ... ... .

 

p.175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두자.

그럼 무엇을?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 섬들이 될 것 같다.

마른 돌담 하나 - 나를 격리시켜 주이게 족할 것이고 -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시프레 나무 - 나를 반겨 맞아주기에 족할 것이니 

한 번의 악수, 어떤 총명의 표시, 어떤 눈길 이런 것들이 그르니에의 보로메 섬일 터이다.

그렇다면 나의 보로메 섬은 무엇일까?

문득 일단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중2~재수 때 함께한 그 길, 어느 여고 앞의 길다란 직선 도로 소위 내 어느 친구와는 그 길을 실크로드라 불렀던, 그 실크로드가 내게 나의 보로메 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길은 4시 4철이면 그 모습을 달리한다. 아직도 커다란 가로수들이 그 양 옆을 자리메꿈하고 있어서 그 길을 잘 밝혀준다. 지금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양 옆의 나무들이 그 도로의 것인지 아니면, 한쪽은 그 모 여고의 담벼락 안의 것 그리고 반대편 쪽의 나무는 그 아파트단지 담벽 내의 나무들 인건지,,,

여튼 어느 것이든 -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 그 길은 한쪽편 끝에서 다른 쪽편 끝을 바라보게 될 때 그리고 어떤 햇살과 얌전한 바람을 함께하게 될 때,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움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자동차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그 고요를 오랫동안 느끼다가도 때론 자동차의 방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괜찮다. 자동차의 방해도, 큰 틀에서의 고요함을 깨뜨리지는 못하니까..

군대에서의 야간 행군할 때, 산 속의 아스팔트 도로를 걸으면서 들리는 나무에 바람이 부데끼는 소리들, 너무 고요하기 그지없고, 좋다. 너무나 좋다. 그 소리, 그 느낌, 그 공기의 감촉.

 

나의 보로메 섬. 이것은 물리적인 것들 중 하나의 예시였고, 추상적이거나 비 물질적인 것들 중의 하나는,,, 생각을 해보자.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eye contact가 될 것 같다. eye contact. 눈 마주침.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있을까?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서로 보고만 있어도 무언가 통하는 그 느낌, 씨익 서로의 미소를 주고받는 그 느낌. 그것이 또다른 나의 보로메 섬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보로메 섬. 나의 보로메 섬.

오 나의 보로메 섬이여..








침묵(沈默)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을 보며..


내가 겪었던 많은 침묵들을 떠올려 보려고 생각한다.


p.7 

우리를 갉아먹는 까닭 모를 내적인 고통을 침묵시키려면 그저 침묵하기만 하면 될 때가 많다. 우리 마음속의 그 고통은 우리가 내뱉은 말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 Recent posts